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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3:1~9 네 지혜를 버리라 2018. 3. 14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9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잠언서는 엄청난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얻는 것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생명나무라는 말씀도 앞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목은 네 지혜를 버리라는 제목입니다. 4절을 보면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사로운이라는 말은 원문에 없지만 번역하면서 문맥을 연결하기 위하여 추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지혜를 버리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지혜라는 것이 버려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어떤 일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할 때에 무엇을 중심으로 결정합니까? 나의 경험과 지식을 따라 나의 유익을 위하여 결정합니다. 비록 물질적인 손해를 보는 결정이라도 물질의 손해보다 더 나은 명예의 이익이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자체를 자신은 정상이라고 여깁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이미 선악판단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 있기에 이것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다툼이 많은 이유도 각자가 자기의 판단과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결정이 죄라고 합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1절에 관원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번역을 보면 군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높은 관리와 함께 음식을 먹게 될 때에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라고 합니다. 네가 만약 음식을 탐하는 자라면 네 목에 칼을 두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그런 음식은 속이는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은 사람들이 무엇을 대접하면 그 안에 속임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그 대접받은 것으로 인하여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본문 6~8절을 먼저 봅니다. 이곳도 음식을 먹는 것과 연결됩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고 합니다. 악한 눈이 있다는 것은 겉으로는 먹고 마시라고 하지만 그 마음에는 악한 뜻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너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악한 의도를 가진 자가 무엇을 대접을 하였는데 잘 모르고 얻어먹고 좋은 말을 했는데 나중에 그 악한 의도가 드러나면 구역질이 날 것이며 좋은 말 한 것도 헛된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 3절과 6절에서 탐하지 말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네페쉬입니다. 갈망하는 인간을 네페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탐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욕망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 일에 기본적인 욕망이 있어야 살아갑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탐하는 마음은 음식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부가 탐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만이 아니라 모든 탐심을 물리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본문 4절을 새번역으로 봅니다. “4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릴 슬기를 가져라.” 네 지혜를 버리라는 말씀을 여기서는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릴 슬기를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네 지혜를 버리라는 것은 개역개정의 보충한 번역대로 하면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라는 것을 1~3, 6~9절은 음식에 대한 탐심을 버리는 것이며 4~5절과 연결하여 보면 부자가 되려는 탐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욕망이 앞서기에 자기 지혜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지혜대로 살아갑니다.

 

본문 5절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지 않는 자들은 평생에 재물을 쌓기 위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자를 지혜롭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많이 모았느냐고 모두 부러워합니다. 워런 버핏이라는 사람은 기부하기 위하여 자신과 식사하는 자리를 경매에 붙이는데 몇 억 원도 나옵니다. 왜 그렇게 인기가 있습니까?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투자를 하면 많은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재물이 결국은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영원에 비추어보면 한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예레미야 17:5~8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는 사람입니까?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났기에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은 자가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이들이 세상에서 잠깐 부자로 힘 있는 자로 보이지만 그 결국은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지혜로운 자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잠시 살아가는 세상살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살이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9~11절입니다.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세상의 지혜라는 것으로 치부하여 둔 재물이 결국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자고새가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어 기르지만 결국 날아 가버리듯이 재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12~13절입니다.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참된 지혜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성소이며 소망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혜가 없는 자는 주를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수치를 당하며 흙에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두 가지 악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이것을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인 것입니다(2:13).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지혜로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물을 저축해보려고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주께로 돌아가서 주를 의지함이 참된 지혜입니다.

 

시편 39:4~7절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이 스스로 살기 위하여 온갖 것을 다 채워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든든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도 진실로 허사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를 위하여 든든하게 쌓아두었다고 먹고 즐기자고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이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는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인지 알게 하여 달라고 하는 자가 지혜자입니다. 인생을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느라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그림자 같은 인생입니다.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주께 소망을 두는 자가 지혜자입니다.

 

시편 49:15~20절입니다.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이런 성경 말씀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사사로운 지혜로 인하여 이 지혜의 말씀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사람들이 존귀하다고 하지만 깨닫지 못하기에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6:24~24절입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가 이 말씀을 믿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돌보아 주신다고 합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아버지께서 어찌 믿는 자들을 기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보다 나의 사사로운 지혜를 더 믿고 살아갑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내가 나를 살리는 것만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교회로 와서 기도한다는 것도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한다면 이것이 어찌 복음의 내용이 되겠습니까?

 

고린도후서 4:3~4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며 그로 인하여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복음의 내용을 구하지 않고 다른 복음에 잘 넘어가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알지 못하게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게 하십니다.

 

이어지는 5~11절입니다.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세상의 지혜로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당하는 모습이 죽음에 넘겨진 자로 보입니다. 욱여쌈, 박해, 거꾸러뜨림, 예수의 죽음 곧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한다고 합니다. 제가 몇 곳에 모임을 가보면 참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왜 저런 일을 당할까 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한 소망이 더욱 분명하여지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사사로운 지혜로 보면 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보면 이들이 지혜롭게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디모데전서 6:3~10절입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1)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됩니다. 모든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질그릇 안에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진다면 이것이 참된 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을 버리고 세상의 지식을 따라 부자가 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며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의 신에 속아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는 모든 가치평가를 돈으로 합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분명한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전하여지는 복음이라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른 복음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들 안에 사사로운 지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지혜가 옳다고 여기고 있기에 자기 지혜를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로 보면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인데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오늘 찾아서 읽어본 말씀만이라도 우리가 믿는다면 세상살이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보기는 보아도 우리의 마음에 담아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나의 사사로운 지식과, 사사로운 경험으로 축적된 타락한 지혜로 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성경은 버리라고 하지만 우리는 버릴 능력조차 없습니다.

 

9절의 말씀대로 하면 우리는 지혜의 말씀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는 자들이 우리들입니다. 아니 저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7:6). 복음 전하는 자를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듣지 않으면 그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10:14). 그런데 오늘 우리가 돼지가 아닙니까? 먼지처럼 털어버려져야 할 대상이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나의 사사로운 지혜로 하나님의 참된 지혜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는 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라고 하신 그 말씀을 친히 이루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자기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붙들게 됩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18~23절입니다.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구약에 기록된 욥기와 시편의 말씀을 바울이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롭다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지혜들이란 결국 사사로운 지혜이기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사로운 지혜는 결국 사람을 자랑하는 결론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거리끼고 미련한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참된 지혜를 받았기에 나오는 현상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내가 소유하고 있는 세상의 것이나 어떤 사람을 자랑하고 있다면 그런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이런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세상에 속한 것과 사람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라면 버리게 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버리게 하실까요? 자기의 사사로운 지혜로 인하여 낭패와 실망을 당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빈손 들고 주께와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참된 지혜를 찾은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