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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3:10~18 징계의 유익    2018. 3. 21   

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11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12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지금 여기 무엇 하려고 모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본성상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을 봅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타락한 인간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한다고 합니다. 누가 이런 말씀을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이건 하나님의 말씀이건 나를 영화롭게 하라는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바르게 전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성경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기 바빴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롯의 사위들이 유황불에 태워졌습니다. 뒤를 돌아본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여 우습게 여기다가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온 세상이 이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은 성취되어야 하기에 셈 족에서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후손들이 애굽으로 갔다가 한 민족을 이루어 출애굽 합니다. 광야 40년을 얼마나 원망 불평하는지 지난주 오전에 말씀을 보았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죽이려고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돌로 쳤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에서 죽인 스가랴의 피까지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이미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듣기 싫어하는지를 확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어떻게 다루시겠습니까?

 

본문 10~11절입니다. 옛 지계 석을 옮기지 말라는 말씀은 이미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이 힘이 있다고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한 자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한 자들을 탈취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구속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하시기에 그들을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구속자가 히브리어로 고엘입니다. ‘고엘은 친척의 빚도 갚아주고 원수도 갚아줍니다. 그런데 고엘이 없는 약한 자가 되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엘이 되어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엘 노릇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잊어버리고 바알의 종교를 따라 자본주의 원리로 살아가게 되면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을 동원하셔서 이들을 치게 하십니다. 이러한 징계가 주어지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징계의 유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징계를 하셔도 말을 듣지 않음으로 인하여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이러한 멸망도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멸망이 징계인 이유는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14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2 훈계를 너의 마음에 간직하고, 지식이 담긴 말씀에 너의 귀를 기울여라. 13 아이 꾸짖는 것을 삼가지 말아라. 매질을 한다고 하여서 죽지는 않는다. 14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스올에서 구하는 일이다.” 자식을 매로 다스리라고 합니다. 매질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매질하는 것이 그 아이를 스올에서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오늘 교육현장에서 한다면 고발 받을 것입니다. 아이를 매질하라는 말씀이 아이에게만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분도출판사에 나온 교부들의 주석에서 인용합니다. 교부(敎父)들은 2~8세기에 교리를 체계화한 사람들을 존칭으로 부르는 말입니다. ‘대 바실리우스의 잠언 시작에 관한 강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배우는 데 게으른 어린이들은 선생님이나 가정교사에게 벌을 받으면 주의를 기울이고 순종합니다. 어린이들이 매를 맞기 전에는 말을 안 들었지만, 매를 맞고 아파 본 뒤에는 귀가 새로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잘 듣고 대답도 잘하며 기억력도 나아집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고 계명을 경멸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교정과 훈육을 경험하고 나면, 그들에게 늘 알려져 있었으나 소홀히 했던 하나님의 계명들을 귀가 막 열리기라도 한 듯이 곧바로 받아들입니다.” 아이가 아니라 어른에게도 하나님의 징계는 유익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의 설교입니다.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수도승처럼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는 호의적이고 경건한 정신으로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런 징계를 통해 그는 이 삶에서 교정되어 미래에 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정되지 않은 모든 죄는 미래의 삶에서 응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들과 종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를 매로 때리는 것은 그의 목숨을 저승에서 구해 내는 일이다교부들의 시대에 잠언의 징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라는 말씀을 성경전체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을 다시 봅니다.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징계의 유익 또는 징계의 목적이 나옵니다. 징계를 함으로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스올은 죽은 자가 가는 곳이기에 무덤이라고도 합니다만 계속하여 연장시키면 지옥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지옥에 가지 않도록 돌이키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의 속담도 있습니다. 이 말은 어려서부터 바르게 훈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린 아이도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기에 그 안에 미련한 것이 박혀 있습니다(22:15). 그러므로 채찍이 그 미련함을 멀리 쫓아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로 미련한 것이 가득 박혀 있습니다. 어른이 되었으니 더욱 단단하게 박혀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련하고 악한 것이란 지난주에 본 말씀대로 세상의 사사로운 지혜로 견고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징계를 통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67, 71절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이 필수코스입니다. 그 이유는 주일 낮에 보는 빌립보서 말씀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고난도 은혜라도 하였습니다(1:29).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멸망의 길로 가면 안 되기에 하나님께서 멸망의 길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우리가 평소에 원하면서 달려가는 삶의 방향성과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까? 그것이 생명의 길인데 이 길로 가지 않는다면 징계를 통하여서 생명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5:5절입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린도교회 안에 근친상간하는 자에 대한 치리입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어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육적인 죽음으로 말하기도 하고 출교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영육 이원론적인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징계로 봐야 합니다. 징계의 목적도 그로 하여금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징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처음부터 구원받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18:17, 딤후1:27).

 

고린도전서 11:31~32절입니다.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성찬식을 위하여 모였는데 먼저 온 사람은 먹고 마심으로 배부르고 취하여 있고 뒤에 온 사람은 먹을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성찬식은 식사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인하여 징계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계가 일어난 것은 성도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받지도 않는 징계를 성도는 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5~11절입니다.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서 인용된 말씀도 잠언서 3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우리를 대우하시는 것이 징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들이 아니라면 징계도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내어버려두심이 심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내어버려 두지지 않으시고 침 삼킬 겨를도 없이 주목하여 살펴보십니다. 그렇게 아들로 대우하심이 징계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악함이 가득하게 찬 질그릇입니다. 이러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담으시는 과정이 징계입니다. 이러한 징계를 받을 때는 슬픕니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의 유익과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받으시는 자들에게 연단은 필수코스입니다. 이런 연단을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징계가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와 평강에 참여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에 아우성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내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혜 자가 지혜의 말을 듣는 자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이든, 스승과 제자이든 지혜를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그 말씀을 전할 때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있다면 참으로 기쁨입니다. 저도 혈육의 가족이 있습니다만 혈육의 정보다 복음으로 소통할 때에 훨씬 더 기쁨이 있습니다. 그 입술에서 정직을 말한다는 것은 지혜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잠언을 통하여 그 지혜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지혜 자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죄인이 형통하고 지혜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형통하지 못하고 고난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고난을 당할 때에 고난을 당하지 않는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합니다. 여호와 경외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믿는 자들은 고난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평안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면 십자가의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서울의 어느 의사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의사 몇 명을 고용한 병원의 원장이기에 겉으로 보면 별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려움을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이 정녕 장래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장래는 고진감래, 대기만성, 인생역전과 같은 세상의 썩어질 것에 대한 장래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말합니다. 보이는 하늘과 땅이 다 사라져도 상관없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편 17:14~15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4 주님, 이 세상에서 받을 몫을 다 받고 사는 자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몸소 구해 주십시오. 그들은 주님께서 쌓아 두신 재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남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그래도 남아서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줍니다. 15 나는 떳떳하게 주님의 얼굴을 뵙겠습니다. 깨어나서 주님의 모습 뵈올 때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잘 대비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이란 이 세상에서만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형통한지 하나님의 재물인데도 마치 자기 것인 양 자기 배를 채울 뿐만 아니라 자식의 자식에게 대대로 물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의지함으로 불법을 행할 수가 없어 믿음으로 살았더니 고난이 가중이 됩니다. 그러나 그 믿음으로 인하여 주님 앞에서 떳떳이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부활 후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쁨이 넘칠 것이라고 합니다. 욥이 극심한 고난 중에 육체 밖에서 주를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고난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랍니다.

 

시편 37:1~13절입니다.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1)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2)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2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이러한 말씀은 이 땅에서의 땅을 차지하거나 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말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시편 73편에서도 잘 나옵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원망을 합니다. 의인은 날마다 말씀을 따라 살려고 경건하게 살아가는데 날마다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악인은 흔히 말하는 만사형통입니다. 시편 17절에서 본 대로 자식대대로 재산을 물려주고 죽을 때에 고통도 없이 평안하게 잘 죽는 것입니다. 이런 고민으로 인하여 성전에 가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악인의 결국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서 사모할 분은 주님 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이기에 주를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합니다. 고난과 징계가 주를 가까이 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도 이런 질문을 하다가 응답을 받는 내용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5: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2)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이유는 결국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5~8절입니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 되어 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을 때에 그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그 십자가로 확증된 사랑이 있기 때문에 환난이나 고난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 가운데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