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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2020. 5. 27    (70장)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1)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항상 생각해야 할 내용은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한다는 사실입니다(5:39). 이런 생각이 없이 성경을 보게 되면 내가 주체가 되어 성경을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내가 성경을 분석하고 이해하여 성경의 지식을 가지게 되면 성경을 안다는 나의 자아만 확장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받습니다(딤후3:16). 타락한 인간은 누구에게 교훈과 책망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이런 우리가 말씀으로 책망 받는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이 시편 1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 곧 주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복이 생명을 누리는 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서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타락한 인간은 악인이 살아가는 삶이 본성적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꾀를 따르고 악인의 길에 서고 악인의 자리에 앉는 일이 인생성공의 길로 보입니다.

 

성경에서 악인이라고 할 때에 세상에서 말하는 기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심지어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는 바리새인을 향하여 예수님은 가장 많은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율법의 뜻을 모르고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은 율법도 모르는 자이며 율법을 마음대로 어기는 자로 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행위와 말씀은 모든 율법을 이루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핵심 강령인 자기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 복 있는 삶을 온전하게 살아내신 예수님의 삶의 결과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빌립보서 2:5~8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삶이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여 주님의 말씀을 죽기까지 복종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입어 주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인도하는 길로 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이 십자가의 길로 간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역사속의 성도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한다는 자가 세상의 헛된 영광으로 바꿔치기 하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편을 봅니다. 구조분석을 간단히 하면 1~3절은 악인들의 소란함이 가득한 세상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고 합니다. 4~6절은 이런 세상을 보고 하늘에 계신이가 비웃으시면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시온에 세우셨다고 합니다. 7~9절은 이 아들이 여호와께 구하여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심판합니다. 10~12절은 그러므로 세상의 군왕들과 재판관들에게 지혜를 얻고 교훈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노하심이 급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것이 여호와께 피하는 길이기에 복된 일이라고 합니다.

 

다시 본문 1절입니다. 어찌하여 이방의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라고 질문형식으로 말합니다. 분노라는 말이 소란이라는 말입니다. 시편 2:1절의 이 한 절이 지금 지구상의 77억 명의 인간 모두에게 향한 질문이 됩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소란을 떨며 헛된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 열리기로 된 동경의 올림픽도 전 세계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사태로 내년으로 연기가 되었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더욱 온 세상은 소란합니다.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삶의 체계도 달라지기에 온갖 미래비전을 세운다고 민족들마다 개인마다 바쁘지만 그 모든 계획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는 허사입니다.

 

시편에서 허사에 대한 구절들만 찾아봅니다. “4: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39: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39:11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나중에 살펴볼 내용이지만 오늘 본문의 허사와 연결하여 간단히 살펴봅니다. 허사(虛事)란 헛일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왕들이 일어나서 소란스럽게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 모든 일들이 다 허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여호와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허사를 좋아합니다. 우리 인생이 든든히 선 때라고 하여도 진실로 허사라고 합니다. 사랑의 영화라는 것이 좀 먹을 것이기에 허사입니다. 여호와께서 세우시지 않으시면 인간의 세움과 지킴이 다 헛일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온 세상은 헛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나서며 서로 꾀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꾀하는 일이 시편 1편에서 악인의 꾀를 쫓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꾀를 쫓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리에 앉는 일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권세아래 살아야 할 피조물이 그 권세에서 해방되려고 독립선언을 한 것이 선악과를 따 먹은 죄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끊임없이 인간 독립, 인간 승리를 외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 해결 못하는 미약한 인간들입니다.

 

시편 2편에서 세상의 군왕들이나 관리들만이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타락한 인간이 다 여호와를 대적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왕인 줄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에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에 넘어간 인생들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는 것을 정말로 싫어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려니 지시를 받고 순종하는 척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고 삽니다. 그러므로 능력만 있다면 경제적 독립선언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나오지만 고객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이 또한 먹고 살길이 막막하게 됩니다. 이런 왕들이 가득 살고 있기에 세상은 요란합니다.

 

본문 4~6절입니다. 본문 1~3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자기만이 홀로 존귀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자든지 자본주의자든지, 사회주의자든지 자유주의자든지, 아니면 무정부주의자든지 간에 제발 날 건드리지 말라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사부부가 살아가는데 부인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남편보고 함께 예수님을 믿고 살자고 하니 남편이 무어라고 하였겠습니까?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지 내가 간섭하지 않을 테니 나도 간섭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이러한 세상을 보시고 하늘에 계신 이가 비웃으시면서 분노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여 비웃으시고 분노하시는 이유는 타락한 인간들이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복음을 말하고 진리를 말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자신들이 진리가 되었다고 말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 한다는 말을 가지고 자신을 진리를 알았기에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진리에 복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땅에 오신 진리이시며 왕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본문 7~9절입니다. 시편 기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여호와의 명을 전합니다. 여호와의 명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합니다. 낳았다고 하니 예수님을 피조물로 보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 역사 속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심을 말씀합니다. 그 아들이 여호와께 구하여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이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에게 소유당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본문 10~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비웃으시면서 진짜 왕을 시온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으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선악과 따 먹은 이후의 모든 인간은 자신들이 다 군왕들이이며 재판관들입니다. 안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자가 자기의 기준을 가진 재판관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나의 재판을 틀렸다고 하면 사법권을 침해한다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명을 받는 다는 것,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며 떨려 즐거워하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일입니다.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일이 여호와께 피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급하십니다.

 

이제 신약에서 시편 2편을 인용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7절입니다. “16 예수께서 1)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2)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 소리가 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합니다. 시편 2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비웃으시고 분노하심으로 자기의 왕을 시온에 세우시는데 그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왕이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 17:4~5절입니다. 절입니다.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예수님께서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집니다.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별세를 말합니다(9:31). 이때 하늘의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왕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사도행전 13:32~35절입니다.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바울사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내용입니다. 시편 2편과 이사야 55:3절과 시편 16:10절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과 죽음과 부활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4:25~28절입니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3)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4)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자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합니다. 사도들이 담대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님이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 합니다. 그리고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이 있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놓아줍니다. 사도들이 이런 일을 당하고 나서 말하는 내용이 시편 2편이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세상은 분노하면서 허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그 예수님께 입을 맞추는 자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의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고 주와 함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야한다는 이 예수님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므로 바른 복음을 전하면 믿을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누구에게 입을 맞추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26~27절입니다.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철장 권세라고 하니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어서 힘과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어서 세상에서 성공하여 예수님 믿는 힘을 보여주자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바로 메시아를 기다린 유대인의 사상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철장 권세로 이방나라를 심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기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말을 예수님이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사랑의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처럼 배반의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9:11~16절입니다.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1)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며 철장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이러한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을 때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왕이 아니라고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자기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한 자들이 거의 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환난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게 되니 이것이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7:36~49절입니다.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5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죄 많은 여인과 바리새인을 비교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 많은 여인이라고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향유를 붓고 그 발에 입을 맞추기를 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의롭다는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주지 않고 감람유도 붓지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죄를 알 수가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용서 받은 죄인을 등장시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자의 모습과 하나님의 아들에 입을 맞추는 자가 어떠함으로 보여줍니다. 십자가 지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의를 믿는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심을 믿고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이들이 여호와께 피한 복 있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