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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8:1~22 내 죄악이 넘쳐서 2021. 2. 10

 

1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2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3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1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13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18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20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표제어를 보면 다윗의 기념하는 시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를 특별한 기념(記念)일에 부른 것으로 봅니다. 그 기념일이 무엇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기념한다는 단어가 기억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민수기 5장을 보면 소제 중에 기억하게 하는 소제(素祭)가 있습니다. 죄를 기억나게 하는 소제입니다. 오늘 본문이 다윗이 죄를 고백하는 내용이 나오기에 이런 표제어를 붙여 회개하는 절기나 예배 시에 부른 것으로 봅니다. 다윗이 고백하는 죄의 깊이가 어떠한지를 보겠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고 있다고 합니다. 주의 진노로 내 살에 성한 곳이 없고 내 뼈에 평안함이 없다고 합니다. 다윗의 이런 탄식은 육체적인 질병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죄에 대한 탄식으로 봅니다. 다윗은 고통 중에 주의 분노를 기억합니다. 2절을 보면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누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32:1~5절입니다.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복이 있는 사람은 허물을 알고 그 허물이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속에 간사함이 없어서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자기의 허물과 간사함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기변명으로 일관합니다.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정죄를 당하지 않으려면 자기의 죄를 토설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숨겨진 것을 토설하여 내도록 주야로 누릅니다. 그래서 허물을 자복하고 내 죄를 아뢰었더니 곧 주께서 내 죄를 사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보고 듣는 것도 우리의 죄가 어떠한지를 알고 토설하는 겁니다. 내가 전적으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곧 사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본문 4~9절입니다. 주께서 주야로 나를 누르시기에 내 살과 뼈에 성한 곳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육체적 질병만이 아니라 내 속의 죄악을 보게 하기 위한 누르심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고백합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아서 내가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라는 찬송 가사가 있습니다. 그 짐을 사람들마다 각자 해석하겠지만, 저는 죄의 짐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그 죄를 보게 된 겁니다. 그 죄가 썩어 악취가 나는 것이며,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고, 종일토록 슬픔에 다니며, 허리에 열기로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다고 하면서 그 탄식을 숨기지 않게 됩니다.

 

시편 88:6~9절입니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여기서도 주께서 누르심으로 고난을 겪습니다. 그렇게 누르시기에 주를 향하여 손을 드는 겁니다. 누른다고 하니 오래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시골에서 농자금 대출을 연대보증으로 받는데 한 사람이 야반도주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소문을 듣고는 찾아가서 돈을 받자고 연대보증선 사람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있다가 그를 눌러봤자 똥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누르시는 이유는 죄 밖에 나오는 것이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내 심장이 뛴다는 말은 정상적이지 않게 뛴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력이 쇠하고 눈의 빛도 나를 떠났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어떤 분의 눈을 보고서는 눈빛이 살아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니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서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욥에게서도 보게 됩니다. 욥이 까닭 모를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아내조차 그런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욥기 2:5~9절입니다. “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7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이 당하는 고난을 가장 이해 못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입니다. 욥의 아내가 가장 욥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남편이 하루아침에 당하는 재앙을 보니 하나님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욥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네가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합니다. 욥은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도 자기 죄라는 고백도 있지만, 선을 추구하기에 고난받는 내용도 있습니다(본문 19). 그래서 어렵습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네 죄로 인하여 이런 재앙이 왔으니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는 말만 있다면 쉽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과율로만 설명되지 않기에 어려운 겁니다.

 

본문 12~15절입니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밉니다. 주께서 누르셔서 자기 죄를 토설하고 있는 자를 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자처럼 반박할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럴 때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주께서 누르시는 고통은 사람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바라보게 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소망이 됩니다. 그럴 때 내 주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합니다.

 

본문 16~20절입니다. 다윗이 두려운 것은 원수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나의 실족으로 인하여 스스로 교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누르시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합니다. 그런데 내 원수는 활발합니다. 그들은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합니다.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왜 다윗을 핍박합니까? 다윗이 선을 따르기에 원수들이 대적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선을 따르는 일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나를 누르시니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을 미워하는 자들은 죄를 인과율로만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53:3~6절입니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대신 당하는 이런 고난을 누가 알겠습니까?

 

이어지는 7~8절입니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오늘 본문 13~14절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에 대하여 인과율로만 해석하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누르시면 두 가지를 다 알게 됩니다. 자신의 죄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죄가 머리까지 차고 넘쳐서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홍수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홍수가 내 머리까지 넘치게 흘러오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신 죄를 짊어지실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죄가 어떠한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넘쳐남을 알기에 탄식하지만, 그 죄보다 더한 속죄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한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본문 21~22절입니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겉으로 보면 여전히 버림받은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멀리하신 모습입니다. 그래서 속히 나를 도와달라고 하면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라고 마무리합니다. 자기 죄를 알고 고백하고 주의 도움을 구하였는데도 구원받지 못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견디기 힘든 이유가 이런 내용 때문입니다. 자기 죄를 알고 주의 도움을 구하였다면 세상 사람들이 보란 듯이 구원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르셔서 죄를 알게 하시고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셨는데도 여전히 삶의 모습은 버림받은 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시편 40:11~13절입니다. “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13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나의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의 긍휼과 인자와 진리로 보호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의 은총을 베풀어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죄 짐이 어떠한지를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마태복음 11:27~30절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말로 무거운 짐은 내가 벗어버릴 수 없는 죄의 짐입니다. 이 죄의 짐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이 해결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배우면 마음의 쉼을 얻는데 그것은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부인의 자리이기에 그 십자가를 진 모습은 구원받지 못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십자가가 구원입니다.

 

로마서 5:20~21절입니다.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하나님께서 다윗을 누르신 것은 죄가 어떠한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 후에 하나님은 죄의 넘침보다 은혜가 더 넘치게 하십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을 한 자리에서 은혜가 의로 왕 노릇을 하는 곳으로 옮기심이 십자가입니다.

 

고린도후서 5:21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의 의를 알고 믿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다윗을 누르신 겁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죄가 자기의 머리에 넘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고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은혜가 임한 자들은 여전히 고난 가운데 살아갑니다.

 

베드로전서 4:12~14절입니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영광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자위에 함께 합니다. 이것이 이 역사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가 마감되는 날 참된 영광이 무엇인지 그 영광을 나타내실 때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반드시 누르십니다. 그리하여 주의 은혜만 사모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