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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1:1~13 가난한 자 2021. 3. 3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다윗이 이런 시편을 기록한 것은 지난주에 본 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이런 시편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기록하였기에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증거되는지를 보기 전에 우선은 우리가 이런 본문을 읽을 때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자가 재앙을 당하는 날에 여호와께서 건지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셔서 살게 하실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또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병을 고쳐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가난한 자를 보살피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살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런 마음이 들도록 설교하려면 성경 여러 곳의 가난한 자에 관한 내용을 인용하면 됩니다. 잠언에서 몇 곳을 보면 가난한 자가 얼마나 미움을 받는지 이웃과 형제와 친구들에게도 미움을 받습니다(14:20,19:7). 그런데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주는 것이기에 그 선행을 갚아주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가난한 자를 돌 본 자가 온갖 고난을 겪는 내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가 됨도 증거되지 않습니다.

 

본문 4~13절을 봅니다. 갑자기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면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고쳐달라고 합니다. 나의 원수들이 악담하기를 그의 이름이 언제 없어질까 하는 겁니다. 이름이 없어진다는 말은 그 사람과 그 가문이 끊어지는 큰 저주의 말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가 복을 받기는커녕 병들어 있으니 와서 보고서는 악한 병이 들었으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내 떡을 나누어 먹던 친한 친구도 발꿈치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주 앞에 세워달라고 하면서 마무리합니다. 이 본문을 다윗을 통하여 먼저 보고 나서 그리스도를 대입하여 봅니다.

 

본문 1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실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런 노래를 하는 것은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압니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라는 단어가 111회 나오는데 최초로 나오는 곳은 출애굽기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채권자같이 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22:25). 송사(訟事)할 때 가난한 자라고 두둔하지 말라고 합니다(23:3). 일곱째 해에 땅을 묵혀두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출을 가난한 자와 들짐승이 먹게 하라고 합니다. 과일나무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23:11). 생명의 속전인 반 세겔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간에 같이 내게 합니다(30:15). 이것은 생명의 가치는 같다는 말입니다. 이런 율법을 다 지켜 행하면 그들이 사는 땅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15:4~5). 그러함에도 땅에는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것인데 네 땅 안에 가난한 형제들을 도와주라고 합니다(15:11). 다윗도 이런 말씀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사무엘상 22:2절입니다.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다윗에게 몰려온 자들은 그의 가족들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무리 들은 어떤 자들이 다윗에게 옵니까? 환난 겪는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빚진 모든 자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보면 이 무리도 자기들의 가족이 적들에게 사로잡혀 가자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30:6). 가난한 자를 돌본 결과가 이렇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를 여호와께서 지키셔서 살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예를 보면 다윗은 복을 받기는커녕 사방에서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님께 간구합니다. 원수들의 손에 맡기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내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면서 내가 주께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서 나를 고쳐달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 돌보았는데 왜 이렇습니까?

 

본문 5~9절입니다. “봉독 다윗은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사울만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의 신하 도엑이라는 사람도 다윗을 고발하여 다윗에게 떡과 칼을 준 제사장 가족이 죽임을 당합니다. 압살롬이 반역할 때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압살롬 편에 섭니다. 다윗의 이런 경험들은 이런 시편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신뢰하여 나의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가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고 합니다. 발꿈치를 든 것이 배신입니다.

 

본문 10~13절입니다. 원수들은 그렇게 하지만 여호와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일으키사 그들에게 보복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부탁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께서 나를 온전하게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워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하면서 두 번 아멘 합니다. 13절은 시편 41편의 마무리이기도 하지만 시편을 다섯 권으로 나누는 첫 권의 마무리이기도 합니다.

 

시편 강해 중에 찰스 스펄전 목사가 강해한 책에 여러 사람의 주해도 요약하여 옮겨두었습니다. 그중에 존 길이라는 사람의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빈약한 자, 지금 번역은 가난한 자입니다. 세상의 궁핍한 자들 전체를 가리키거나 궁핍한 성도들을 특별히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궁핍한 한 개인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단수형으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사한다. 40편 마지막 절에서는 그분을 가리켜 가난하고 궁핍하오나라고 표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난한 자로 보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보고 묵상하면서 설교를 준비하였는데 2009년 시편 설교에서도 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재앙에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신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들은 세상에도 많이 있습니다. 종교와 상관없이도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들이 있으며 자연을 보살피는 자들도 있습니다. 버려진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살피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가난한 자를 예수님으로 보면 전혀 다르게 읽어야 합니다. 2009년 설교에서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분으로 전하였습니다만 오늘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분으로 오셨음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1절을 다시 봅니다. 가난한 자를 예수님으로 보면 가난한 예수님을 보살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실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너무 낯설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는 모습이나 신약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는 모습이 단지 세상의 구제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율법이나 시편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돌보라는 것은 애굽에서 긍휼로 구원받아 나왔듯이 약속의 땅에서 긍휼을 잊지 말라는 말씀도 됩니다만 오늘 본문에서는 가난하게 오신 메시아를 맞이하라는 말씀으로 봅니다.

 

이사야 53:1~3절입니다. “1 우리가 1)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2)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잠언에서 몇 곳 살펴본 대로 가난한 자가 다가오면 이웃도 형제도 친구들도 다들 피하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오시는데 어떤 모습으로 옵니까?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기에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모습으로 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고 고통을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압니다. 이렇게 가난한 모습의 메시아를 보기 싫다고 얼굴을 가리고 피해 가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임을 이어서 말씀하시지만 가난한 메시아는 싫은 겁니다.

 

구약에서 오시리라는 메시아의 예언대로 예수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알기로는 가난한 목수의 집 아들로 오셨습니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태어난 곳은 말 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전하신 말씀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란 종종 말씀드린 대로 시편에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말합니다. 이들은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천국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5~6절입니다.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증거 한 세례요한조차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의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가난한 메시아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강하고 부유한 메시아를 원하였던 유대인들의 특징이 세례 요한에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를 원하십니까?

 

마태복음 19:20~23절입니다.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영생에 관하여 예수님께 질문한 부자 관원에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느 계명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 일부를 말씀하시자 이 부자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면서 무엇이 부족하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부자는 고민하다가 돌아갔습니다. 생명을 얻는 길 곧 예수님을 따른다는 길은 가난한 분을 따라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 쉽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자 예수님의 답변은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예수님을 가난하게 하심으로 이루어내십니다.

 

오늘 본문 2~10절입니다. “봉독 다윗이 가난한 자들을 돌보다가 당한 고난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죄로 인한 고난이 아니라 기름 부음 받음으로 사울에게 핍박을 받고 도망 다니는 중에 환난을 겪고 원통하고 빚진 자들이 다윗에게 몰려듭니다. 그러자 온갖 적들이 다 등장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다윗을 반역한 자들이 외부만이 아니라 아들이며 측근들입니다. 함께 식사 한 자들이 배반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8절입니다.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ㄱ)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가룟 유다가 배반하는 것은 오늘 본문 9절의 성취가 일어나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메시아를 팔아넘기는 것도 가난한 메시아가 싫었던 겁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시는 가난한 예수님을 그 당시의 부유한 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갖 음모를 만들어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하였고 결국은 살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그들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26:6~13절입니다.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1)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엄청난 가격의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여인을 보고 제자들이 분개합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가 왜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고 하시면서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가 그들을 돌보면 되지만,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않으니 이 여인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좋은 일이라면 가난한 예수님이 죽음으로 자기들의 구원이 일어남을 이 여인은 알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미리 부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복음이 전하여지는 곳에 다 전하라고 합니다. 이 여인을 저는 마리아로 봅니다. 그가 예수님의 발 앞에 말씀을 듣던 자였습니다.

 

고린도후서 8: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부유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유함은 참된 부유함입니다. 세상의 섞어질 부유함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부유함입니다. 그 부유함을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해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가난해 짐으로 인하여 가난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부유함을 받아 누리게 되는 일이 은혜이며 이 정신이 연보에 들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9~11절입니다. “9 기록된 바 ㄱ)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4)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5)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연보는 물질을 드리는 겁니다만 바울이 인용한 시편의 내용(112:9)은 가난한 자에게 주어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연보가 물질을 넘어서 의의 열매가 가득하며 감사로 귀결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부유한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가난해 짐으로 우리가 생명에 부유하게 된 것이 연보의 뜻입니다.

 

빌립보서 2:5~8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1)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3)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며 동등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부유하신 분이 온전히 가난해져서 완전히 자신을 다 주신 겁니다.

 

이어지는 9~11절입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가난해지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에 무릎을 꿇는 자가 가난해진 예수님을 대접하는 겁니다. 이러한 자들을 예수님은 함께 끌어 않으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셔서 영원한 생명의 부유함을 주시는 겁니다.

 

야고보 2:5~7절입니다.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교회가 부자를 환대하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를 상속받게 하십니다.

 

본문 11~13절을 봅니다. 가난한 분으로 오신 예수님을 원수들이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고 결국 죽였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완전한 패배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예수님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도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은 그 아들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온전하게 붙드시어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십니다. 그 과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합니다. '아멘'을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아멘! 아멘!